대만 야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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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만의 야구 국가대표팀.
'''야구는 대만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 종목이자 리그의 프로화가 이루어진 스포츠이다.''' 따라서 대만인들은 야구에 자존심을 걸기에 야구를 자국의 '''국기(國技)'''이자 국가적 자존심으로 본다. 프로리그에서 대규모 승부조작 스캔들이 난 것 때문에 더더욱 국대에 목숨 거는 듯하다. 덕분에 과거에 존재했던 야구 대회였던 IBAF 대륙간컵이나 야구 월드컵에 거의 유일하게 프로급 주전을 상당수 내보냈다.[5][6] 그렇기 때문에 그래도 한국에선 이 두 대회는 방송 중계도 거의 안하고 가볍게 취급하는 정도인데[7] , 대만은 거의 아시안 게임이나 WBC 수준급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이나 일본에게 이기면 자국 야구 인프라의 막장성을 일시적이나마 날리는 위안감이 되는 듯.
그 외에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프리미어 12, 아시아 윈터 베이스볼 리그 같은 국제대회들 유치 및 지원이 상당한 편인데 자국 리그에 1990년대 중반에 터진 승부조작 파문으로 인해 4개 팀만 남은 상황이었고, 아마추어라도 좋으니 국제대회 성적으로 위안을 삼는 경향이 더 컸었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대회를 대거 유치하고 참가시 더 총력을 다하는 것도 큰 이유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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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레벨의 대회에 참여하는 대표팀의 경우에는 성적이 영 좋지 못하다. 사실 프로레벨에서 북미, 중남미, 일본, 한국과 비교했을 때, 니카라과를 제외하면 대만이 객관적인 전력이 가장 딸리니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물론 한국 대표팀을 연장 혈투끝에 물리친 적도 있었고,[8] 2014 인천 아시안게임때처럼 결승에서 박빙의 승부를 펼치기도 하는 등 의외의 선전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1라운드 탈락을,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한국에게 2:3으로 역전패당했지만 이번에는 지고도 기분좋게 2라운드에 진출했지만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고 탈락했다. 그래도 왕웨이중, 린화칭, 우셩펑 등 좋은 선수들이 나오며 희망을 밝히고있다.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에서 입고 나온 이 유니폼은 대만국가대표야구팀의 유니폼이 아니다. CPBL측에서 상표권을 가지고 있는 디자인으로 로고상의 동물은 대만 토종견을 모티브로 삼았다. CPBL에서 라이센스를 준 온라인 몰에서 판매되는 팀 타이완 굿즈
이 때문에 아마야구 협회에 해당하는 중화야구협회가 대표팀을 구성했던 2019년 프리미어12에서는 기존 유니폼을 입고 나왔다. 대만의 경우 국제대회 비중이 높다 보니 여전히 아마추어 협회의 힘이 강한데, 아마추어 협회와 프로 연맹간의 대립으로 대표팀을 구성할 때마다 잡음이 일어나는 편으로, 이 유니폼도 그런 갈등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CPBL측은 앞으로 이 유니폼을 계속 밀 생각이라 2019년 프로야구 30주년 기념 올스타전 때는 양 팀에 각각 홈과 원정 유니폼을 입혀 경기를 치뤘다. 2018년 일본-대만 프로야구 친선전에서도 이 유니폼을 입고 나갔다. 사실 2013년 친선전 때도 NPB와 CPBL 양측 모두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나갔는데 이 때 중화야구협회에서 CPBL에 항의하면서 이미 갈등이 커진 상태였다.
2016년 일본-대만 프로야구 친선전 때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을 수 없었던 CPBL선발팀은 단순하게 CHINESE TAIPEI라고 쓰여진 유니폼을 입고 나갔다. 그런데 리그 측에서 판매한 굿즈에 중화민국 국기, CHINESE TAIPEI, CPBL로고를 혼용하면서 문제가 됐고 아예 CPBL 선발 전용 유니폼을 만들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타이중 저우지 야구장을 사실상의 홈 구장으로 쓰고 있다. 타이베이에는 대형 야구장이 없는데다가 2013년부터 대형 야구장 중 유일하게 연고지 팀이 없어서 이 곳에서 대거 국제경기를 열었는데, 중신 브라더스가 2015년부터 홈으로 쓰고 있고 가오슝이 비어있음에도 이 곳에서 대부분의 국제경기를 열고 있다..
2. 라이벌?
2.1. 일본
아시아에서 일본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는 대만인 만큼 일본 야구계와는 꾸준한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매년 프로팀끼리의 친선경기는 물론이고 국가대항전도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는데, 2013 베이스볼 챌린지라는 이름의 평가전을 시작으로 2016, 2017, 2018년[9] 까지 꾸준히 평가전을 가지고 있다.
역대 대만 일본 전적
2.2. 대한민국
한국 대표팀을 라이벌로 여긴다. 물론 한국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일단 대만 국가대표팀 수준에서 그나마 해볼만한 대상이 한국 국가대표팀이기 때문에 한국과의 경기에서는 대만 국민들의 엄청난 관심이 쏠리는데, 한국에게 질 경우에는 한일전에서 패배한 한국대표팀처럼 무진장 까인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1년 파나마에서 열린 야구 월드컵에선 토너먼트에서 허무하게 탈락하면서 자국 인터넷에서 엄청난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자신들은 전력으로 참가하는 반면, 대학선수 위주로 대충 선수 뽑아서 출전한 한국이 토너먼트에 진출하면서 그 감정이 더 열폭한 모양.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 타도와 같은 격한 문구들이 자주 등장하였는데 최근 들어서 격한 문구는 다소 잦아들게 되었다. 이를 대만의 반한감정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나마 한국이 주요 야구강국 중에서는 자신들이 이길 수 있는 대상이고 실제로 이긴 경험이 있기 때문에 팬들 또한 한국전에서의 강박관념이 강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반한감정 관련해서는 관련 한국-대만 관계 참고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전력 분석원을 한국 대표팀 스태프로 위장시키고 덕아웃에 들여보냈다가 발각 된적도 있다. 이 사건은 CPBL[10] 에서 사과하며 마무리 되었다.
사실 전적만 보면 한국이 압도적으로, 1군 대표팀끼리의 맞대결을 보자면 20경기 4승 16패[11] 로 대만이 절대적인 열세를 기록하고 있다. 도하 참사나 삿포로 참사를 빼곤 대만이 한국에게 이긴 경기도 얼마 안되고 특히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한국이 3전 전승이라는 압도적인 기록을 갖고 있으나 사실 경기 내용만 보면 이상하리 만치 한국만 보면 물고 늘어지는 늪야구를 선보였다.
98년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는 첫 만남에서는 콜드게임 승이라는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주었으나 더블리그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8회에 가까스로 역전을 기록해 승리를 가져갔으며, 99년 아시아선수권때도 연장 11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박재홍의 끝내기 안타로 겨우 승리했다. 02 부산 아시안 게임때도 막판까지 추격을 허용하는 등 한국을 상대로 저력을 보여왔다.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때는 9회에 박진만의 호수비가 아니었다면 경기를 내줬을 지도 모르는 위기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고,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때도 8회의 기적이 나오기 전까지 시종일관 끌려다녔다.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에서는 실업 대표팀이 한국 대표팀을 꺾는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2019년 프리미어 12에서는 프로군단으로 7대 0 압승을 거두었다. 이제는 진짜 라이벌이라 할 정도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다른나라들에게 장렬히 털렸다.
그리고 한국 좌완 에이스들을 상대로 강세를 보인다는 점도 특징.
2.3. 의외의 천적, 중국 야구 국가대표팀
의아할 수 있는데 프로야구가 없는[15] 중국 야구 국가대표팀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엔 무려 승부치기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고, 승부치기에서 4점을 내며 무난히 이길 것으로 예상했으나 중국이 5점을 내며 역전패를 당하기도 했다. 또한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중국이 대만을 4:1로 털어버리며 대만의 광탈에 일조하기도 했다.
3. 역대 성적
3.1.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역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전적 순위 : 14위'''
3.2. WBSC 프리미어 12
'''역대 WBSC 프리미어 12 전적 순위 : 6위'''
3.3. 올림픽
3.4. 아시안 게임
-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 동메달
-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 동메달
-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 은메달
-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 : 금메달
-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 은메달
-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 : 은메달
-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 동메달
3.5.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 1954년 1회 대회(필리핀) : 4위
- 1955년 2회 대회(필리핀) : 준우승
- 1959년 3회 대회(일본) : 3위
- 1962년 4회 대회(대만) : 3위
- 1963년 5회 대회(한국) : 3위
- 1965년 6회 대회(필리핀) : 3위
- 1967년 7회 대회(일본) : 3위
- 1969년 8회 대회(대만) : 준우승
- 1971년 9회 대회(한국) : 5위
- 1973년 10회 대회(필리핀) : 3위
- 1975년 11회 대회(한국) : 4위
- 1983년 12회 대회(한국) : 공동 우승
- 1985년 13회 대회(호주) : 공동 준우승
- 1987년 14회 대회(일본) : 우승
- 1989년 15회 대회(한국) : 공동 우승
- 1991년 16회 대회(중국) : 준우승
- 1993년 17회 대회(호주) : 3위
- 1995년 18회 대회(일본) : 3위
- 1997년 19회 대회(대만) : 3위
- 1999년 20회 대회(한국) : 3위
- 2001년 21회 대회(대만) : 우승
- 2003년 22회 대회(일본) : 준우승
- 2005년 23회 대회(일본) : 준우승
- 2007년 24회 대회(대만) : 3위
- 2009년 25회 대회(일본) : 준우승
- 2012년 26회 대회(대만) : 준우승
3.6. 과거의 대회
3.6.1. 세계야구선수권대회(야구 월드컵)
- 1938년 1회 대회(영국)
- 1939년 2회 대회(쿠바)
- 1940년 3회 대회(쿠바)
- 1941년 4회 대회(쿠바)
- 1942년 5회 대회(쿠바)
- 1943년 6회 대회(쿠바)
- 1944년 7회 대회(베네수엘라)
- 1945년 8회 대회(베네수엘라)
- 1947년 9회 대회(콜롬비아)
- 1948년 10회 대회(니카라과)
- 1950년 11회 대회(니카라과)
- 1951년 12회 대회(멕시코)
- 1952년 13회 대회(쿠바)
- 1953년 14회 대회(베네수엘라)
- 1961년 15회 대회(코스타리카)
- 1965년 16회 대회(콜롬비아)
- 1969년 17회 대회(도미니카 공화국)
- 1970년 18회 대회(콜롬비아)
- 1971년 19회 대회(쿠바)
- 1972년 20회 대회(니카라과) : 8위
- 1973년 21회 대회(쿠바)
- 1973년[16] 22회 대회(니카라과) : 5위
- 1974년 23회 대회(미국) : 8위
- 1976년 24회 대회(콜롬비아) : 7위
- 1978년 25회 대회(이탈리아)
- 1980년 26회 대회(일본)
- 1982년 27회 대회(한국) : 4위
- 1984년 28회 대회(쿠바) : 준우승
- 1986년 29회 대회(네덜란드) : 3위
- 1988년 30회 대회(이탈리아) : 3위
- 1990년 31회 대회(캐나다) : 6위
- 1994년 32회 대회(니카라과) : 6위
- 1998년 33회 대회(이탈리아) : 13위
- 2001년 34회 대회(대만) : 3위
- 2003년 35회 대회(쿠바) : 4위
- 2005년 36회 대회(네덜란드) : B조 6위
- 2007년 37회 대회(대만) : 8위
- 2009년 38회 대회(유럽[17] ) : 8위
- 2011년 39회 대회(파나마) : 13위
3.6.2. 대륙간컵
- 1973년 1회 대회(이탈리아) : 7위
- 1975년 2회 대회(캐나다)
- 1977년 3회 대회(니카라과) : 7위
- 1979년 4회 대회(쿠바)
- 1981년 5회 대회(캐나다)
- 1983년 6회 대회(벨기에) : 3위
- 1985년 7회 대회(캐나다) : 4위
- 1987년 8회 대회(쿠바) : 4위
- 1989년 9회 대회(푸에르토리코) : 6위
- 1991년 10회 대회(스페인) : 4위
- 1993년 11회 대회(이탈리아)
- 1995년 12회 대회(쿠바) : 7위
- 1997년 13회 대회(스페인)
- 1999년 14회 대회(호주) : 5위
- 2002년 15회 대회(쿠바) : 4위
- 2006년 16회 대회(대만) : 3위
- 2010년 17회 대회(대만) : 4위
[1] 연속 4회 출전[2] 연속 2회 출전[3] 연속 3회 출전[4] 연속 7회 출전[5] 일본은 알다시피 여기엔 사회인 야구 대표팀을, 한국도 대학+프로 2군, 그중에서도 상무와 경찰청에서 차출해 데리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까 이들 대회에서는 대만의 성적이 좋은 편. [6] 프로 출범 이전에는 한국에서도 선동렬, 최동원, 이선희, 장효조, 김봉연 등 실업야구의 슈퍼스타들을 내보냈었다. 프로 출범 이후에는 구단들이 차출을 꺼려하면서 대학야구 위주로 선발.[7] 2010 대만에서 열린 대륙간컵 대회에서 한국은 대만에게 5-11로 졌는데, 한국에선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대만전 선발이니 뭐니를 탐색할 정도로 다른 때와 달리 관심을 가졌기에 그나마 이 패배가 좀 크게 보도되긴 했다.[8] 이 때 승리도 극적으로 일궈낸데다 반한감정이 심했던 터라 대만의 애국가 방송때 해당 경기 장면이 사용되기도 했다.[9] 2015년과 2019년엔 프리미어 12에서 맞상대 했다.[10] 대만 프로야구 리그를 관리하는 단체로 한국의 KBO, 일본의 일본야구기구와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A] 실업+대학 선발 대표팀[11] 2019.11.14 기준.[12] 2006 도하 AG 4이닝 3실점 / 2007 올림픽 예선 5이닝 1실점 / 2009 WBC 3이닝 무실점 / 2010 광저우 AG 6이닝 1실점.[13] 2014 인천 AG 6이닝 3실점 / 2019 프리미어 12 3⅓이닝 3실점.[14] 2014 인천 AG 4이닝 무실점 / 2017 WBC 3이닝 3실점 / 2018 자카르타 AG 6이닝 2실점.[15] 중국야구리그가 있긴 하지만 메이저리그 등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실업야구에 가깝다.[시범종목] A B [16] 1973년에는 2회 개최.[17]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국가가 아닌 한 대륙이 개최. 개최 국가는 네덜란드, 독일, 산마리노, 스웨덴, 스페인, 이탈리아, 체코, 크로아티아 8개국.